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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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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6-27 10:21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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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다

입력
 
 수정2022.06.26. 오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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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공식 폐기 결정한 가운데 대법원 청사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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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6주, 심장 소리를 들은 순간 직감했다. 아, 달라졌구나. 태아에 대한 모성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접한 환희와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불가역적인 변화가 나의 몸에, 나의 삶에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건조하지만 확고한 감정, 실제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내 삶은 달라졌다. 혼자서는 먹고 자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가여운 존재를 그가 한 명의 동료 시민으로 성장할 때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것. 끝 간 데 없는 책임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나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나만이 아니라 아이도 함께 감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 삶과 아이의 삶이 20년가량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서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이르러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할수록 아연하다. ‘낳기만 하면 아이는 스스로 큰다’는 옛말엔 매분 매초 헛소리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헛소리다. 아이를 낳는 문제는 특히 그 아이를 몸으로 품고 출산하는 여성에게 있어 ‘일단 낳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밝혔듯이 ‘전인격적 결단에 해당한다’.

법은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와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철학이나 신학과 달리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존엄의 상실, 자유와 권리의 침해, 권리와 권리간 충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 범위 확정 등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질서를 세우고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그런 만큼 삶의 구체적 상황에 밀착하여 법논리가 전개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와 달리 지나치게 추상적·도식적이거나 분석적이어서 그 논리의 전개와 결말이 실상과 동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자동차를 부품별로 하나하나 분해해서 그 각 부품은 자동차라 할 수 없으니 부품의 모음도 자동차라 할 수 없어 결국 자동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낸다든지, 역으로 불타는 집 안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소방차를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를 가정에 대한 의무와 헌신 문제로 치환시켜 무너져 내리는 가족 공동체에 대한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소방차는 제공되어선 안 된다고 결론 내린다든지. 그리고 임신중단(낙태)을 처벌할 것인가를 둘러싼 법적 논의는 법조인인 내게 실상을 무시하고 허구적인 권리충돌관계를 도출하여 도식적으로 법논리를 전개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된다.

임신중단 비범죄화에 관한 법적 논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의 도식으로 치환되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권리충돌 구조에서부터 의문이 든다. 과연 그런가. 임신중단을 고민하는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 자리 잡은 태아와 싸우는 관계에 놓이는가. 임신중단을 한 여성은 태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존재가 되는가. 임신중단이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면 임신한 여성에게 출산은 권리가 아닌 의무인가. 출산을 의무로 규정할 권한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인생 대부분을 가임기로 살아왔고 실제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으로서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서로 싸우는 관계에 있을 수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임신은 여성에게 몸과 삶을 불가역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실적 문제, 책임의 문제다. 그리고 모의 삶은 태어난 아이의 삶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이는 곧 태아의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누구도 타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삶을 강요할 수 없다.

공동체의 목표는 여성이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온전한 선택과 책임 아래에서만 임신하고 출산 후에는 자신과 아이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여성이 임신중단을 고민해야 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 그리고 임신중단을 결단한 여성에게는 당대의 의료 수준에 비추어 가장 안전하고 위생적이며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곧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으로 설명된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 체계 아래에서 임신중단은 독립한 하나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삶 전부를 바꾸는 변화를 의무가 아닌 권리로 설정하고 그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여성이 자신과 아이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의 건강과 삶도 권리로서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한편, 여성 재생산권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태아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산을 의무로 놓고 불가피한 임신중단을 범죄로 설정한다고 임신중단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중세시절의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임신중단을 시도하는 여성들만 늘게 될 뿐이다. 임신중단은 여성의 재생산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줄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 체계에 비추어 볼 때, 임신중단의 문제를 단순히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구조로 치환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도식적인지 알 수 있다. 임신중단에 있어 여성과 태아는 대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운명공동체이다.

지난주 약 50년간 지속하며 여성의 낙태 비처벌의 근거가 되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미국 연방대법원이 뒤집었다. 여성의 임신중단 여부는 다수결의 원칙(입법)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말이다. 사법의 역할,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의 역할을 포기한 데에서 나아가 다수가 소수의 인권을 침해할 때 사법이 이를 저지한다는 역할도 포기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재까지 입법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여성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명백한 퇴행이 우리 사회의 퇴행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성의 임신중단 결정을 범죄화하고 출산을 의무로 삼아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무위로 돌리는 데에 더는 태아의 생명 보호가 핑계처럼 소환되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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